1970~80년대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지역인 퀘벡의 분리 독립 운동을 주도했다가 지역 정당으로 축소되었던 퀘벡당이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퀘벡당은 10월 5일 치른 퀘벡주의회 선거에서 총 127석 중 59석을 얻어 원내 다수당이 됐다. 다른 정당과 연릭 없이 단독으로 정부를 꾸리고 폴 생피에르 플라몽동 퀘벡당 대표가 주총리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캐나다 CBC) 퀘벡당이 주총리를 배출하는 것 2012년 선거 이후 14년 만이다.

질문.

퀘벡당이 당선된게 캐나다 전체랑 무슨 관계가 있나요?

– 필자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퀘벡이 프랑스령이고, 캐나다에는 주둔미군처럼 프랑스 사람들이 집권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퀘벡에 여행할 일이 생겨서 갔다온 이후로 퀘벡에 관심이 생겼고, 아직 캐나다령이고 독립운동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퀘벡의 독립운동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현재 마크 카니가 캐나다 총리 (Prime Minister – 캐나다는 입헌군주제로, 대통령이 없다. 총리가 대통령직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가 되기전에 캐나다를 거의 말아먹은 전력이 있는 저스틴 트뤼도 (Justin Trudeau)가 총리로 앉아 있을때 알버타로 하여금 온타리오와 차별당하는 기분을 주어 독립하려고 하였다. 만약 퀘벡이 캐나다로부터 독립을 하게 될 경우, 알버타도 영향을 받아 독립을 시도할 수도 있는 사례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알버타가 독립하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정부에 내는 세금은 다른 주들보다 더 많은데 (관광, 석유, 가스, 채굴 사업이 집중되어있다.) 특혜는 없다는 현실의 괴리감에 더해, 트뤼도 정부를 위시한 캐나다 정부가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가득해서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독립하려는 캘리포니아와 마찬가지로 알버타도 막대한 천연자원으로 높은 세수 기반, 독자적인 세금, 에너지 정책이 가능하고, 자원으로 인한 수익이 보장만 된다면, 지금 독립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퀘벡은 정치적, 민족적인 이유가 더 내제되어 있어서 단순히 경제권만을 놓고 독립운동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퀘벡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캐나다의 역사가 시작되기도 전인, 1600년대부터 프랑스가 현재의 퀘벡을 중심으로 New France (신 프랑스)를 건설했고, 카톨릭 문화가 자리 잡았다. (실제로, 퀘벡에 여행을 가보면 노트르담 성당이 시내에 한 개 있고, 몬트리올에 크게 한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도깨비 드라마에서 상징처럼 등장하는 페어몬트 호텔 [Fairmont Le Chateau Frontenac]도 프랑스 문화와 건축양식입니다.)

1759년 Plains of Abraham 전투에서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했고, 1763년 Paris 조양으로 New France 대부분이 영국 지배 아래 들어갑니다. (원래 영국과 프랑스는 앙숙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죠.) – 도깨비의 맨 마지막 장면에 전생에 성공한 김고은과 도깨비 신부를 오랫동안 기다리던 공유가 만나는 장면의 배경이 바로 Plains of Abraham 공원입니다. (가보면, 공유 무덤은 거기에 없습니다만…)

그 결과, 영국이 지배하는 국가 안에 대규모 프랑스어 / 카톨릭 사회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French Canadian 에게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영어권 북미에서 우리의 언어와 문화, 종교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것이 훗날 퀘벡 민족주의의 역사적 토대가 됩니다.

1867년 – 캐나다 연방 탄생 – 퀘벡 민족주의 – “캐나다에서 프랑스 고유의 문화와 권리를 보호하자”

1867~1950년대 – 영어권의 경제적 우위에 대한 불만 – 특히 몬트리올 지역

1960년대 – 조용한 혁명 – Jean Lesage가 이끄는 퀘벡 자유당 집권 – 전력산업 국유화와 Hydro-Quebec의 성장 추진 – 이때부터 ‘퀘벡’이라는 별도의 사회와 민족적 공동체라는 인식이 강해짐

1960~1970년대 – 독립운동 본격화 – 영국 외교관 납치 / 라폭테 (Laporte) 살해 – 일명 [10월 위기] 발발

1977년 – charter of the French Language (Bill 101) 퀘벡은 프랑스어 사회다. 선언

1980년 – 첫 번째 독립 주민투표 – 5월 20일! 결과는 No가 59.56%로 근소하게 패배였다.

1982년 – 여기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다. 피에르 트뤼도! 그 이름도 익숙한 저스틴 트뤼도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 연방정부가 캐나다 헌범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가져오는 Constitution Act, 1982를 추진한다. 그동안 대통령을 두지 않고, 모든 정치적, 입법관련한 정부방침을 영국에 의해 통제되던 당시 정황에서 영국으로 부터 캐나다 헌법을 완전히 가져오는 법안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유일하게 반대했던 퀘벡의 의견을 묵살하고 시행한다. 이것이 1990년대 독립운동 재상승의 계기중 하나로 작용한다.

1994년 – 퀘벡당 (Parti Quebecois) 재집권 – 쟈크 파리조 (Jacques Parizeau)가 퀘벡의 주권확보(분리 독립) 운동 추진

1995년 10월 30일 – 두 번째 주민투표에서 완전히 근소한 차이로 다시한번 독립의지가 꺾였습니다. 이후 2000년대가 넘어서면서 퀘벡의 독립운동이 약해진다.

결론.

이런 상황에서, 2026년 10월 5일 퀘벡당이 다수당이 된것은 퀘벡에 다시 독립운동의 바람이 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캐나다와 다른 나라들의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민자를 포용하고 다문화주의를 강조하는 좌파 자유당이 10년 넘게 장기 집권하고 있는 캐나다에서 반 이민을 앞세운 강경 우파 세력이 점차 힘을 얻고 있음을 시사한다는데 있어서, 퀘벡당의 대표격인 플라옹동이라는 인물이 주도하여 반 이민을 주창하고 독립운동을 부추길지 모른다. 그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퀘벡에 정착하는 연간 이민자 수를 지금의 절반 수준인 3만 5000명으로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원래도 퀘벡에서 일하려면 프랑스어가 필수였지만, 향후에 100% 프랑스어 구사자만 취업이 가능해 질 수도 있다.

퀘벡당의 플라몽동은 2028년 이전에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2000년 이후로 잠잠하던 독립운동에 재점화가 될지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clark c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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