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을 보세요~, 입에 넣은 사탕은 한쪽볼로, 그렇지.”

(웅성 웅성)

“이번엔 이 옷을 입어볼까?”

“조명좀 올려봐~”

(팟, 타닥, 화악)

(소곤대며) ‘엄마, 더워…’

(소곤대며) ‘혁재야 조금만 참아야지? 거의 다 끝났네?’

내 머리 바로 위에서 45도 각도로 내 얼굴로 내리쬐던 사각 조명이 당시 8살의 내게는 한 여름의 태양보다도 더 뜨겁게 느껴졌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환하고 달아오르던 필라멘트 타는 냄새를 맡으며 한 여름의 끝자락에 겨울옷들을 꽉 껴입고는, 환하게 웃기를 원하는 어른들에게 볼멘소리를 내며 얼굴을 뿌욱 찡그리고 있었다. 그런 내 옆에서 엄마는 다 끝나가니 조금만 더 참자고 귀속말로 연신 웃으며 엄포를 놓았고, 그런 내게 맨 구석에서 진행표인듯한 종이뭉치를 들고 이리저리 정신없이 움직이던 한 누나가 ‘야쿠르트’를 내밀며 “많이 덥니? 이번 한번만 더 찍을거야. 조금만 참을까?” 하며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이 내 얼굴에 튀지않게 조심히 다가오며 나를 달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좋아, 여기까지”

감독님의 그 한마디에 다들 ‘아아~’ 하고 한숨을 쉬며 이마의 땀을 훔쳐내었다.

에어컨도 들어오지 않는 6평 남짓의 스튜디오에서 일주일에 한번정도 있던 촬영스케줄 때문에 오늘도 엄마가 헐레벌떡 우리반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결코 가볍지 않은 청록색의 미닫이 문이 열리며 선생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겸연쩍게 얘기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우리 혁재 오늘 사진 찍는 날이에요. 데려갈게요.”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다는듯이 나를 쳐다보며 웃으셨다.

“혁재야, 어서 정리하고 엄마 따라가야지?”

부랴부랴 책들을 가방에 욱여넣고, 엄마를 따라 복도를 물찬제비처럼 비상하듯 뛰어나가 택시를 잡았다. 무려 전체가 녹색이던 사각형의 각이 제대로 살아있는 ‘포니2’였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여의도로 가주세요’라고 말하면서 익숙하게 택시비로 낼 돈을 세고 있는 엄마를 한번 쳐다보고 창밖으로 얼굴을 돌리니 씽씽카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듯 주변의 건물들과 사람들이 우리 뒤로 휙휙 지나갔다. 여름이 다 가고 있었지만 가을에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듯 꽤나 내리찌는 태양 아래 달궈지듯 따뜻한 택시 내부는 덥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모르게 포근한 느낌마저 동시에 들어서 가만히 눈을감고 바깥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찌릉 찌릉, 이용~, 하하하, 히히히, 호호호, 부앙, 씨용~씨용… 여러가지 소리들이 경쾌하게 귀를 때리며 나를 놀려주며 있었고, 엄마는 “늦었네, 늦었어. 아저씨 쪼금만 빨리 가주세요. 아이, 어떡해.” 하며 택시 뒷자석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여 혼자’피식’ 웃고는 다시 눈을 감고 차창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스튜디오에 도착했고, 엄마와 나는 서둘러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미도파 백화점

8살이던 당시의 나는 백화점이 뭔지 스튜디오가 뭔지도 몰랐고, 별 관심도 없었다. 그저 엄마가 가자면 가고 오라면 오는 날의 연속이었달까. 좋았던 점은 학교를 공식적으로 땡땡이치고 엄마랑 택시를 탄다는 즐거움과 촬영이 끝나면 언제가 들르는 시장 떡볶이 정도일까. 싫었던 점도 있었다. 촬영하는 몇시간동안 끊임없이 내리쬐던 그 사각조명과 필라멘트 타는냄새.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수십벌의 옷을 갈아입으며 촬영을 이어나갔다. 감독님과 조감독님, 스태프들은 미도파 백화점의 작년 카다로그를 주욱 펼쳐놓고 끊임없이 나와 또 다른 2명의 아이들을 번갈아보며 회의를 하고 있었고, 서로 잘 알지 못했던 우리들은 그저 멀뚱히 서로를 쳐다보다가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괜히 발을 땅에 굴리면서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음 괜찮네, 근데 맨 왼쪽아이는 사탕 문게 너무 티나지 않나?”

“표정이 안 살아서 할 수 없었어요.”

“뭐, 그대로 가지, 자, 스탠바이”

그렇게 수차례의 플래쉬가 번쩍였고, 나는 머리위의 조명의 뜨거운 기운과 플래쉬로 아른거리는 눈을 연신 비비며 정신을 다른곳으로 쏟으려고 애썼다.

cf… 그 역사의 시작.

1넌전, 7살에 유치원을 들어가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빠가 나를 부르며 마당을 질러오고 계셨다.

“혁재야, 옷입고 아빠랑 분식 먹으러 갈까?”

나는 ‘분식’이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있는 여러 메뉴를 머리속에 그리며 아빠손을 잡고 한 사진관에 갔고, 여러 사진을 찍는동안 뭐를 먼저 먹을까 머리속으로 계속 그리느라 멍한 얼굴 이었던가보다.

“좀 웃어볼까?”

끝내 만족스럽게 웃는 사진을 건지지 못한대, 여러번의 사진촬영이 끝났고, 마침내 분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뒤 이상하게 피곤함을 느끼며 바로 잠이 들었다. 그 뒤로 1년뒤인 8살이 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매달 3~4번씩 스튜디오에 엄마와 같이 출근하여 백화점 카달로그를 장식할 사진들을 촬영해 나갔다. 학교를 땡땡이 친다는 배덕감과 희열, 그리고 조명의 끊임없는 공격 때문에 집에 돌아오면 항상 기묘한 피곤함에 바로 잠이 들었던것 같다.

맨 아래 왼쪽이 필자. 오른쪽 큰사진은 무려 ‘한지붕 세가족’ 드라마의 이종민 배우다.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같은 장소에 있었던 탓인지 내적 친밀감이 있다.

사진촬영을 하는 시간은 고되고, 덥고, 힘들었지만 TV에서만 보던 아역배우들을 볼 수 있다는 신기함과 중간 중간 있는 간식 타임에 대한 설레임으로 보상된 느낌이 없지 않다.

주위의 친구들이 ‘부르뎅 아동복’과 많이 헷갈려했던 ‘뉴골든 아동복’…

카다로그가 완성되어 가면서, 나는 ‘이제 여기 다시 안와도 되는건가? 아싸’ 하면서 속으로 신나했던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으니… 카다로그의 끝은 새로운 촬영의 시작일 뿐이었다.

(사진 용량 초과로 인해 다음글로 계속)

clark c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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