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건 괜찮네, 이걸로 갈까?”
“네, 저도 그건 좋은것 같아요.”
“그럼 이걸로 마무리 하는걸로 하고, 다음거 진행하지.”

왼쪽의 큰 사진이 필자

‘응, 끝났구나, 분식먹고 싶은데’ 엄마를 보며 내가 신호를 보냈지만, 연신 감독님께 뭔가를 얘기하시고 바빠보였기에 금방 포기하였다. 역시나 촬영후에 먹는 분식은 더 맛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오뎅국물을 수저로 홀짝대고 있을때 엄마가 환하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혁재야, 다음에는 백화점 카다로그 말고, CF 찍을거야, 잘 할 수 있지? 찍으면서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어. 좋지?”
그렇게 말하고 엄마는 떡볶이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꿈꾸는 표정이었고,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또 한다고? 왜? 이게 끝 아니야?’
일주일 후, 선생님은 바른생활책을 펴놓고, 칠판에 분필로 동그라미를 주욱 그리시며 ‘어른에게 인사할 때는…’ 이라고 막 말하려는 순간, 드르륵, 문이 열렸고, 엄마의 다급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혁재야, 얼른가자. 늦었어.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는 책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엄마를 따라 나섰고, 다시 녹색 포니2 택시에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의도로 가지 않고, 다른 모르는 곳으로 택시가 도착했고, 내 오래된 기억으로는 강남 어디의 대형마트였던 것 같다. 한 30분을 기다렸을까 무료함에 5번째 하품을 하는데, 왠 예쁜 누나가 ‘죄송합니다.’ 하며 이쪽으로 왔다.
“이 친구예요?” “안녕, 오늘 잘해보자~”
“네…네..에”
그렇게 촬영은 시작되었고, 투명한 겉봉지에 ‘알밤케익’ (그런 이름이었던것 같다) 이라고 적힌 제품봉지를 둘이 하나씩 들고 ‘찰나’같던 촬영은 순식간에 끝났고, 아직도 화끈거리는 볼을 내 두손으로 황급히 가리며 그 누나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그 자리를 나왔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내 얼굴을 보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혁재야, 방금 그 누나가 누군지 알아?”
그 누나 생각에 다시 얼굴이 붉어져 말을 못하고 있자,
“조영원이야. 드라마에 나오는 누나야.” 하며 싱글벙글 하고 있다.
‘응. 조영원이라는 누나구나’ 나는 이름을 잊지말자고 혼자 다짐했다.
당시에 우리집은 카메라나 어떤 영상도구도 없었기에 CF촬영이 진행되는동안 기록을 남길 수가 없었다. 실제 CF가 방영되고 난 뒤, 신문에 나온 사진을 캡쳐하는 정도였는데, 아쉽게도 그 사진은 스크랩 해두지 않은 모양이다. 찾을수가 없다.
다음주에 또 다른 촬영을 했는데, 지금은 아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썬듀~

신문광고 사진 – 맨 오른쪽이 필자.
동영상은 링크가 안되는 모양이다. 아래 네이버 블로그에서 당시 광고를 볼 수 있다.
https://blog.naver.com/chlwo1954-01/224393900443

그렇게 단란한 가족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모토로 촬영했던 썬듀는 정말이지 8살의 아이가 먹기에는 극악의 맛이었다. 전에 어떤 만화에서 ‘물체X’라는 소재가 나왔는데 (맛은 극악이지만 꾸준히 먹으면 기본체력과 MP가 올라간다는 설정이었다), 당시의 썬듀가 나에게는 그랬다. 두가지 맛이 있었던것 같은데, 그나마 사과맛은 좀 먹을만 했다. 하지만 오리지널은 콩의 비릿한 맛이 그대로 남아 있는 두유로, 지금 나이의 내가 먹으면 ‘흠. 원료를 아낌없이 갈아넣은 훌륭한 음료로군.’ 하고 먹겠지만, 어린 나이의 나에게는 두유의 첫시작을 망친 음료였다. 그 뒤로 지금까지 나는 두유를 찾아먹지 않는다. 엄마와 감독님은 맛이 좀 없을지라도 맛있는 표정을 지으라고 하니, 속으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어찌저찌 촬영을 마치고, 떡볶이로 입을 가시고 집에가서 손가락으로 계속 혀를 긇어댔던 기억이 난다. 정말 맛이 없었다. (피자를 처음 맛보던 11살의 그 때와 같은 충격이랄까. 피자도 처음 먹을때는 정말 맛이 없었다. 이런걸 왜 먹는거야. 지금은 없어서 못먹지만…)
그 이후에도,
‘농심사발면 (여러 CM송을 작곡하신 김도향 선생님과 촬영)’ – TV용이 아닌 라디오용 광고였던것 같기도 하다. 찾아볼 수가 없다.
‘신세계 백화점 카다로그’ 등등.
촬영은 초등학교 6학년 초까지 계속되었고, 중학교 진학을 앞둔 분기점에 ‘이제 사진은 그만찍고 싶다’고 칭얼댔다는 이유로 (내 기억에는 없다), 사극 ‘토지’ 아역으로 발탁될 기회도 내버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좀 아닌것 같다. 정말 후보중에 있었다면 돈줄을 놓칠리가 없으니까) 중학교부터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내 인생의 CF는 막을 내린다.
어린 나이에 느꼈던 낯선 환경, 뜨거운 조명, 익숙치 않은 어른의 지시등으로 인해, 촬영이 고역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좋은 추억이지 않나 싶다.뭐, 연예인으로서의 길을 가지 않은것은 좀 아쉽지만,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성공하지는 못하는 단역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이 자리를 빌어서, 숫기 없는 아이와 촬영하시느라 고생하신 스텝분들과 연기자분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남기기